바다를 사랑한 남매
w. 꿀먹은고양이 (@_honeycat__)
그날의 바다는 유독 빛이 났다. 마치 우리의 목적지였던 걸 예상했던 것처럼, 그날의 바다는 잔잔한 파도가 선박과 부딪히는 아름다운 소리를 내게 들려주고는 다시 먼 곳으로 떠나기를 반복했다.
혜주가 서야만 했던 공연이었다. 오로지 혜주만이 그 역할을 완벽히 해낼 수 있었다. 혜주는 자신의 꿈을 향해,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향해, 그리고 찬란히 펼쳐질 발레리나 혜주의 미래를 향해 쉼 없이 달려가고 있었다. 그 어떤 악행도 한 적 없었고, 누군가에게 앙심을 살 만한 일 또한 한 적 없는 선한 웃음을 지닌 아이였다.
혜주가, 혜주는, 혜주의, 혜주만이…
하나뿐인 소중한 내 동생의 찬란한 미래와 아름다운 꿈을 단숨에 짓밟은 사람들은 그저 악마에 불과했다.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 검증되지 않은 수술을 진행한 의사, 누구에게나 공평해야 할 입장임에도 자신의 부를 위해 사건을 덮기에 급급했던 경찰, 헛소문을 기사로 적어 여론을 망가뜨린 기자, 자신의 이름을 주연 자리에 넣어 명예를 얻기 위해 사고를 보고도 못 본 척 하며 돌아선 발레리나까지. 그들은 전부 혜주의 미래를 어둠 속에 강제로 끌어넣었다. 아무나 다가올 수 없는 곳, 구조 요청을 하기 어려운 곳, 하지만 부와 명예에 미쳐 있는 이들을 단숨에 홀릴 수 있는 곳을 고민하다 정한 곳은 고급 크루즈 위의 선박 파티였다. 나는, 오로지 혜주의 복수만을 위해 그들의 삶을 완전히 짓밟기로 결심했다.
“ 오빠, 난 괜찮아. 재활치료 열심히 해서, 그렇게 해서 공연 설 때까지 노력할게. “
“ 네가 여태 해 온 노력을 전부 짓밟은 건 그들이야. “
“ 그래도 괜찮아. 물론 나도 화는 나지만, 오빠의 삶까지 망가지는 걸 보고 싶지는 않아. “
아마 혜주가 이런 계획을 알았다면, 혜주는 이렇게 말해 주었을까. 평생을 타인에게 화내거나 폭력을 가한 적 한 번 없는 삶을 살아온 가족이 자신을 위해 복수극을 펼치고 자신의 삶조차 망가지게 하겠다는 계획을 알았다면 혜주는 나의 행동을 말렸을 것이고, 그날의 바다는 나의 목적지가 되지 않고 선박에 파도가 부딪히는 소리를 내 주지도 않았을까.
내 손으로 누군가의 삶을 마무리하게 하는 건 고통스러웠다. 비록 복수를 위해서, 처음부터 이런 복수를 위해서 설계한 것들이었지만 내 앞의 사람이 죽어 버렸다는 걸 인지하는 순간 몸에 흐르는 전율은 잔인했다. 이렇게까지 하며 복수를 하는 것이 맞을까 싶었을 때쯤, 내 손에 의해 사라진 생명은 둘이었다. 남은 세 명에게 눈속임을 하기 위해 함께 죽어버린 것으로 위장하고, 점차 죽음에 가까워지게 하는 것까지 꽤나 수월했다.
“ 야, 내 동생 혜주 얼굴… 다들 잘 알고 있겠지? “
“ 동생이었어요? “
“ 뺑소니 사고를 목격하고도 못 본 척 돌아섰던 당신 말이야. 그렇게 얻은 자리 마음에 들어? “
“ … “
“ 펜으로 사람 죽인다는 말 들어 봤지? 너는 펜으로 혜주를 죽였어. 말도 안 되는 헛소문으로. “
“ 죄송해요… “
“ 정말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자리가 욕심이 나서 그랬어요. “
“ 혜주가 수술받기 전까지 뭐라고 했는지 알아…?!! 의사 선생님 믿고 수술 잘 받고 오겠대. “
남은 세 명을 하나하나 바라보며 울부짖었다. 혜주를 망가뜨린 자들은, 나조차 망가뜨리기 위해 시야를 방해할 플래시가 터지는 카메라며 제압하기 위한 테이저건까지 각종 무기를 손에 쥐고 있었다. 이 계획이 성공할 일은 처음부터 없었다.
“ 서로 죄를 덮어주면 다들 진실이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나 봐? “
잠깐의 침묵이 흘렀다. 여태 이어온 악행에 대한 반성과 죄책감이었을까, 내 손에 들린 총에 의한 공포심이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복수심에 불타오른 내 모습을 보고 겁에 질린 건 아니었을까.
“ 내 동생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너희들은 지옥에 떨어져도 모를 거야. “
바다 한가운데, 파도 소리를 가로지르며 구조 헬기가 도착하는 소리가 들렸다. 구조 헬기는 나의 총에 맞은 의사와 사건의 목격자인 기자와 발레리나를 데려갔고 신고를 받고 함께 날아온 경찰 헬기는 나를 체포한 채로 하늘을 날았다.
“ 귀하를 현 시각부로 형사소송법 제 212조에 의거하여 영장 없이 현행범 체포합니다. 변호인을 선임할 수 있으며, 변명의 기회가 있고, 불리한 진술을 거부할 수 있으며, 체포적부심을 법원에 신청할 수 있습니다. “
“ 오빠, 오빠는 산이랑 바다 중에 뭐가 더 좋아? “
“ 오빠는 바다가 더 좋아. 혜주는? “
“ 혜주는 산보다 바다가 좋아! 바다는 바람도 시원하고 물고기도 살고 거북이도 살잖아! “
“ 파도가 모래사장이나 조약돌에 부딪히는 소리가 좋아서 오빠는 바다를 좋아해. “
“ 혜주, 나중에 커서 바다의 파도처럼 예쁜 춤을 추는 발레리나가 될 거야! “
“ 발레리나 되면 오빠가 혜주 많이 가르쳐 주고 도와줄게. “
“ 진짜? 약속 꼭 지켜야 된다 오빠! “
파도의 움직임을, 파도가 내는 소리를, 바닷가의 분위기를 사랑했다. 바다의 움직임을 형상화한 발레 공연을 사랑했고, 발레리나와 발레리노의 동작에 맞추어 흘러나오는 음악을 사랑했다. 나는 그저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하는 혜주를 사랑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 오빠, 나 왔어. “
“ 혜주… “
철창 너머로 보이는 혜주였지만, 그렇기에 절대 닿을 수 없었지만 혜주는 여전했다. 혜주는 여전히 바다를 사랑했고, 바다를 사랑한 나를 사랑했다. 혜주는 나를 바라보다 이내 눈물을 흘렸다.
“ 나 때문에, 그러니까 그 사람들 때문에 내 망가진 삶 때문에, 오빠가… “
“ …미안해. “
“ 아니야, 오빠는… 오빠는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가 없어. “
“ 혜주야, 혜주는… 혜주는 오빠가 살아온 삶보다 더 행복했으면 좋겠어. 발레, 더 이상 못 해도 괜찮아. 절망하지 않아도 돼. 네가 어릴 때 오빠한테 말했던 것처럼, 여전히 바다가 너를 부른다면… 바다를 사랑한다면, 자유롭고 넓은 바다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