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消忘

w. 물마루 (@horizon_l00)

가끔 그런 날이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문득 10년 전 작은 비밀기지에서 한 약속이 떠오른다거나, 어딘가에서 흐르는 물소리에 학교 앞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려온다거나. 묻어둔 기억이 갑자기 생각나는 날 말이다. 그럼 이런 날 옆에 같은 고향에 행동력 좋은 놈이 하나 있으면 어떻게 될까.

' 이렇게 되겠지. '

수현은 가벼운 가방을 한 번 들어보았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인 공룡과 연락이 닿아 가볍게 밥이나 먹고 갈까 했더니 잠깐 나온 고향 얘기에 다짜고짜 기차표를 끊은 참이었다.

소망消忘리. 거리는 그렇게 멀다 할 수 없지만 찾아가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마을. 그래서인지 수현은 명절에도 고향을 찾지 않았다. 찾을 이유도 없었지만.

" 황수현, 다음 역이야. "

" 아, 응. "

고급스러운 검정색 카메라의 렌즈 커버를 연 공룡이 수현을 바라보며 재촉했다. 별로 챙길 짐도 없었으니 그닥 필요한 행동은 아니었다. 기차창 너머 흐릿하게 수평선이 보였다.

이번 역은 ○○역, ○○역입니다. 내리시는 문은...

연신 카메라를 조작하던 공룡이 고개를 들었다. 도시의 기차역보다는 허름하지만 이런 구석진 곳의 기차역 치고는 꽤 새것같은 역이 보였다. 몇 남지 않은 승객을 담은 기차가 다시 떠나갔다. 수현은 그런 기차를 빤히 바라보다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 좀 걸어야겠네. "

" 얼마나? "

" 택시가 있으면 모르는데, 한시간 반은 걸어야될걸. "

수현의 입에서 한숨이 새어나왔다. 공룡은 카메라를 두어번 만지고는 앞장서 걸어갔다. 내일이 휴가라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수현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

 

*

 

마을에 가까워지자 질리도록 느껴졌던 흙냄새가 다 거짓이였다는 듯 사라졌다. 불어오는 바람 사이로 소금기가 느껴졌다. 수현은 땅에 딱 달라붙은 발을 움직여 희미한 기억을 따라갔다. 공룡은 수현을 부르려다 입을 닫았다. 멈췄다 걸었다 하며 수현이 도착한 곳은 학교였다. 바다를 앞에 두고 아이 키에도 닿지 않는 하얀 담장을 방패삼아 그닥 높지 않게 서있는 건물. 창문 너머로 책상이 줄지어 늘어져 있었다. 수현은 그것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 바다… "

어느새 카메라를 올린 공룡이 조용한 바다를 향해 렌즈를 돌렸다. 구름 하나 없이 맑았던 하늘이 어느새 붉게 물들어 있었다. 태양은 물에 닿을 듯 낮게 내려왔다. 와, 하고 작게 탄성을 뱉은 공룡은 손에 든 검은 고철에 바다를 담았다. 두개가 된 태양을 경계삼아 느슨하게 하늘과 바다를 가르는 수평선을 담았다.

" 오랜만이다. "

" 응. "

" 역시 고향에서 찍는 사진이 제일이라니까. "

장난스레 웃은 공룡이 이번에는 학교로 렌즈를 돌렸다. 수현은 힐끔 뒤돌아보고는 걸음을 옮겨 바다로 다가갔다.

사박. 노을져 붉게 물든 모래에 신발 자국이 찍혔다. 저녁이 되자 안그래도 쌀쌀한 바람이 이젠 제멋대로 불어대며 그를 밀어내듯 달려들었다. 수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모래에 발을 박았다. 파도가 세걸음 앞에서 뒷걸음질 쳤다. 어둡게 물든 모래를 바라보던 수현이 느리게 시선을 돌렸다. 배 한 척, 새 한마리도 보이지 않는 붉은 바다였다. 태양은 물에 발을 담근 채 마지막 빛을 뿜어냈다. 그 빛에 닿은 물살이 흔들리며 제자리를 찾아간다. 파노라마처럼 바다를 죽 훑어보는 노을색 눈동자에 사람의 인영이 닿았다.

" …? "

어림잡아 초등학교 고학년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바다에 무릎까지 잠긴 채 태양을 바라보고 있었다. 나무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나부끼는 모습이 꼭 새가 날아갈 듯 날개를 퍼덕이는 모습 같았기에 그는 홀린 듯 다가가 작은 어깨를 두드렸다. 기척에 놀란 아이가 몸을 떨더니 고개를 슬며시 돌렸다. 붉게 물든 주황빛 눈이 깜빡였다. 당황한 듯 고개를 천천히 기울인 아이가 무슨 일이냐는 눈으로 그를 바라봤다. 다시 환상과도 같은 회상에 빠진 수현이 그 눈을 바라보고 있었다. 저 눈이 조금만 더 어두웠다면… 그 생각을 깬 것은 익숙한 목소리였다.

" 바다야! "

그래, 저 눈. 두 사람의 시선이 그곳으로 달려오는 두 사람에게 멈췄다. 먼저 달려온 여성은 수현을 잠시 빤히 바라보다 아이에게 다가갔다. 뒤늦게 다가온 공룡이 턱짓으로 그를 가리켰다.

" 뜰 선배. "

진짜 하나도 안 변했네. 공룡이 중얼거렸다. 수현의 시선을 느낀건지 잠뜰은 아이를 들어 모래사장에 내려놓았다. 아쉽다는 듯 바다를 빤히 바라보던 아이는 낯선 두 사람에게서 떨어져 튄 물방울을 털어내는 잠뜰의 뒤에 재빠르게 숨었다.

" 수현이지? "

" 응. "

" 오랜만이네, 선배. "

가벼운 안부를 주고받은 뒤에 서로의 근황이 오고갔다. 잠뜰은 자신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다 말하며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었다. 아이의 이름은 바다, 사고로 가족을 잃어 마을에서 돌봐주고 있지만 충격 때문인지 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수현은 어쩐지 익숙한 분위기에 아이를 힐끗 바라봤다. 진갈색 그닥 길지 않은 머리카락에 노을진 다홍색 눈동자. 호기심 가득한 얼굴이면서도 두려움에 꾹 다문 입술. 그 와중에도 양손으로 잠뜰의 옷자락을 꾹 쥐고 있었다.

" 이번주는 내가 봐주기로 해서, 아마 내일까진 같이 있어야 할거야. "

" 뭐 상관없지? 수현이도 휴가 내일까지만 받았대. "

두 사람의 대화는 안중에도 없는지 수현의 눈은 바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제게 향한 시선이 조금 부담스러운지 입을 달싹이던 바다는 조용히 시선을 피했다. 수현은 주머니를 뒤적이다 딱딱한 무언가를 꺼내들었다.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조개 모양의 작은 장식품. 잠시 망설이던 수현이 모래사장에 무릎을 댔다.

" 자. "

" … "

수현에게 손을 뻗은 바다가 제 손에 넘겨진 작은 조개에 얼굴을 붉혔다. 수현은 여전히 그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표정을 꺼내들었다. 공룡이 대화가 끝나 그 어깨를 두드릴 때 까지, 수현은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

 

" 와… 진짜 보기 싫은 사람이 둘이나 왔네. "

" 어쭈, 이게? "

공룡이 지겹다는 눈으로 그들을 흘겨보며 몸을 쭉 뺀 덕개에게 주먹을 들어올렸다. 머리 위로 엑스자를 그리며 벽에 바싹 달라붙은 덕개가 수현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 ? "

수현은 눈을 찌푸리며 덕개를 바라봤다.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얼마간 수현을 더 바라보던 덕개가 카운터에서 열쇠를 꺼내 내밀었다.

" 왜 바다뷰인지는 모르겠지만… 괜찮다고 하면 뭐. "

" 괜찮다니까. 얘 아까도 바다 보다가 왔어. "

또다시 입을 닫은 수현을 대신하여 공룡이 열쇠를 낚아챘다. 덕개는 으르렁대며 그를 노려보다 수현을 크게 불렀다. 창밖을 빤히 바라보던 수현이 느리게 고개를 돌리고 공룡의 뒤를 따라갔다.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덕개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년 만에 찾아온 손님을 받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낡은 라디오 소리가 흘러나왔다.

" 넌 그 침대 쓸거지? "

안쪽 침대에 가방을 던지며 공룡이 물었다. 수현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공룡은 고개를 끄덕이며 화장실로 쏙 들어가버렸다.

" … 바다. "

그 아이를 보고 있으면 이상한 광경이 보였다. 붉은, 붉은 바다. 파도가 모래사장 끝을 덮치고 방파제 위를 넘본다. 그리고 작은 아이가 보였다. 방파제 위에 홀로 올라 바다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면 바다를 실어 나른 바람에 푹 젖은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 …현, 황수현! "

깜빡. 수현은 흐릿한 눈을 두어번 더 깜빡였다. 창문 너머는 어둑했지만 방 안은 작은 등이 켜져 있어 밝았다. 젖은 머리카락 위에 대충 수건을 걸친 공룡이 어느새 침대에 쓰러지듯 누워 있는 수현을 흔들었다. 수현은 잠시 천장을 바라보다 몸을 일으켰다.

" 나 잤어? "

" 어. 뭔 꿈을 꾼거야? 땀범벅인데. "

그 말에 수현이 목 뒤를 매만졌다. 틀린 것 하나 없는 상황이었다.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던 수현이 일어나 화장실로 들어갔다. 공룡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 창문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람 없는 실내에서 바라본 바다는 어둡고 고요했다. 공룡은 가라앉은 눈으로 바다를 바라봤다.

" 바다… 바다라, 선배도 걱정이 많다니까. "

수건으로 머리를 박박 긁어대던 공룡이 손을 멈췄다.

" 마을 이름 하나 참 잘지었지. "

공룡은 축축한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다 일어났다. 달칵 하며 열린 문에서 수현이 터덜터덜 걸어나와 침대에 엎어졌다.

 

" 잘거야? "

" 응. "

수현은 눈을 감았다. 쏴아아. 어디선가 거친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환청이겠거니 하고 생각하기 무섭게 잠이 밀려 들어왔다.

 

꿈, 아니면 기억? 수현은 영화를 보듯 눈앞에 지나가는 광경들을 멍하니 지켜봤다. 학교에서 나와 바다가 보이는 절벽으로 걸어간다. 여섯명의 아이들이 엉성하게 엮어 만든 비밀기지 속에서 만화를 꺼내 읽는다. 과자가 가득했고 담요가 하나둘 쌓이고 있었다. 웃음소리가 들렸다. 어느새 바뀐 시점에서 그들은 돌이 가득한 해안가를 걷고 있었다. 한 사람이 물에 손을 넣었다 꺼내면 작은 조개가 서너개 들려 있었다. 또 웃음소리가 들린다. 수현은 입을 열려다 말았다. 고개를 들면 붉은 하늘이 보인다. 손을 뻗으면 무언가 무거운 것이 달린 것 마냥 움직이는 모습이 어색하기만 했다. 이건, 마치…

" … 아. "

딱딱한 천장이 보인다. 수현은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웠다. 창밖은 어두웠다. 바람이 창문을 두어번 두드리더니 도망갔다. 가습기를 몇십대는 틀어둔 듯 습했다. 묵직한 공기가 방을 감싸고 돌아 수현은 겉옷을 챙기고 뛰쳐나올 수 밖에 없었다.

 

밤바다는 차갑다. 어느새 고개를 내민 별들이 바다에 똑같이 박혀있었다. 수현은 파도가 그린 궤적을 따라 걸었다. 진흙처럼 신발에 달라붙은 모래가 걸을때마다 사부작 거리며 아스라졌다.

" 진짜 있네. "

익숙한 목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알고 있는 목소리. 후드를 푹 눌러쓴 아래로 저처럼 새까만 머리칼이 보였다.

" … 형. "

" 그래. "

각별은 잠시 어깨를 으쓱했다. 손 끝에는 작은 아이가 있었다. 수현은 작게 읊조렸다.

" 바다? "

" 너 쟤 알아? "

" … 조개. "

바다가 주먹쥔 손을 흔들었다.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보던 각별이 픽 웃으며 바다를 이끌고 수현에게 다가왔다.

" 졸업하자마자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더니 돌아왔네? "

" 그냥. "

" 말 짧은건 여전해. "

삐뚜스름하게 말하면서도 그닥 불쾌함을 드러내지는 않았다. 수현은 눈을 깜빡였다. 기억하고 있다. 기억하고 있어야 하는 사람인데도… 바람이 두 어른의 사이를 가른다. 바다는 멀뚱히 파도를 보다 수현에게 시선을 돌렸다. 각별과 바다에게 향하지 않은 시선은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 걱정 마. "

" … 응. "

바다의 입에서 말이 새고 있었다. 두 사람은 그저 멍히 말을 들을 뿐이었다.

" 바다는… 그대로 있으니까. "

" … "

수현은 그 붉은 눈을 피하려고 했다. 바다는 깊이 가라앉은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방파제에서 뒤를 돌아보는 소년의 눈이 서서히 겹쳐보였다. 수현아? 누군가 그렇게 말했다. 조각난 기억 틈으로 파도가 밀려들어온다. 그대로 하늘을 바라보면 등 뒤에 물이 차오른다. 몸에 물이 닿기 무섭게 몸속으로 바닷물이 밀고 들어온다. 그대로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

 

" 일어났냐? "

덕개의 옆에서 하얀 가운을 걸친 채 수현을 내려다보던 붉은 눈이 시선을 돌렸다. 수현이 눈을 떠 주위를 살폈다. 저까지 여섯명. 그 어릴때의 추억 그대로였다.

" 그냥 좀 놀란 것 같은데. "

" 그럼 다행이고. "

" … 뭐야. "

" 일어나지 말고 누워, 아직 더 봐야해. "

" 라더야? "

" 그래. 머리 기르니까 인상 좀 다르지? "

장난스레 웃은 라더가 주섬주섬 짐을 정리했다. 수현이 눈을 깜빡였다. 그는 그제야 제가 바다 모래사장 위에 앉아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마지막으로 본 별이 가득한 하늘과는 다르게 구름 가득한 푸른 하늘이 보였다.

" 걸을래? 좋아했잖아. "

" … 내가? "

" 응. 폭풍 부는 날 갑자기 방파제 위에서 휩쓸리기 전까지. "

" … … 내가? "

잠깐의 침묵 끝에 수현이 의문 가득한 눈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익숙하다. 익숙한데도… 그 어떤 것도 기억에 없었다. 무언가 머리속에서 싹 쓸려간 듯… 잠뜰이 피식 웃으며 무릎을 잡고 일어섰다.

" 분명 노을이 빠진 바다에 흘렸던 걸거야. "

" … 바다는 어디있어? "

수현이 급하게 물었다. 잠뜰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그 얼굴을 본 수현이 머리를 움켜쥐었다.

 

" 요만한… 금색 눈에, 누나랑 닮은. "

" 와, 너 말 이렇게 많이 하는거 20년만이야. "

" 아무튼…! "

" 그래, 그래. 바다… 아니, 애초에 이 마을에 갈색 머리는 공룡이 빼면 나뿐인데? "

" 쟤 넘어지면서 머리 다쳤나본데? "

" 그러게. 각별 오빠는 왜 밤중에 애를 불러서 쓰러지게… "

수현은 무슨 말을 하냐는 눈으로 그들을 훑었다. 덕개와 공룡은 서로 어깨를 으쓱했고 각별은 불똥이 튄 와중이기에 저 멀리 도망간 참이었다. 수현은 그들이 한마디씩 주고받는 사이 몸을 완전히 일으키고 천천히 걸었다. 사박이는 모래소리가 시끌벅적한 소음을 여유롭게 눌러가자 돌이 가득한 해안에 어린 아이가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 바다? "

아이는 붉은 눈으로 수현을 바라봤다.

" 왜 돌아왔어? "

" 뭐? "

" 소망. 소망리. 기억에서 사라지는 마을. … 특정한 경우지만. "

아이는 한걸음씩 수현을 향해 다가왔다. 숨이 잠시 멎을 듯 고요하면서 잔잔한, 파도처럼.

" 바다에 홀려서 잃어놓고서는… 내가 누구를 따라했다고 생각해? 왜 돌아온거야? 돌려받고 싶어서? "

쏴아아. 파도가 발목을 덮었다. 아이는 그 자신이 마치 노을인 듯 바다에 덮였다. 태양을 삼킨 듯 붉게 타오른 바다가 파도를 연신 불어댔다. 푹 젖은 아이가 돌 사이로 손을 넣었다 빼낸다. 손에 들린 것은 조개가 아니였다. 소라를 들고 아이는 수현에게 다가섰다.

" 돌려줄 수는 없어. 이 넓은 바다에서 십몇년은 된 기억을 찾는다. 그게 얼마나 힘든건데? "

수현은 손을 들어올렸다. 곧게 뻗은 손에 소라가 잡혔다. 소라를 물끄럼 바라보던 수현이 고개를 들었다. 제쪽을 향해 덮쳐오던 파도는 온데간데 없고 조용하게 부는 칼바람과 손에 들인 소라가 전부였다. 수현은 소라고둥을 귀에 가져다댔다.

쏴아아.

" … 바다. "

추억이 없었기에 겨우 연락이 닿았다. 그 방파제에서 떨어져 잃은 시간은 아마… 교복을 입은 여섯명의 사진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수현은 뒤를 돌아봤다.

쏴아아.

진짜 기억을 가진 이들이 보는 바다는, 자신이 보는 것과 같을까?

쏴아아.

파도소리가 귀를 때렸다. 진짜 바다도 아닌것이, 제멋대로 내는 소리임에도…

제법 진짜 같지.

수현이 희미하게 웃었다. 다섯명이 너나 할 것 없이 제게 다가오고 있었다. 그들에게 수현은 바다일 것이다. 몇년이 흘러도 언제나 그대로인, 그것이 설령 소라 속 바다일 뿐이더라도.

쏴아아.

파도가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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