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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수처리장 살인 사건

w. 후 (@0707Jgm)

"사건입니다."

 

 

 

오후 늦은 시간, 퇴근 준비에 접어들 무렵 티순경이 미스터리 수사반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늘도 출동이로군. 자리에서 일어난 잠경위는 초동수사보고서를 받으며 티순경을 쳐다보았다. 여긴 성화시가 아닌데? 네, 정해시에서 급히 협조 요청 들어왔습니다. 빨리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차로 두 시간은 걸릴 텐데. 각경사가 고생하겠군. 아이고 허리야, 조퇴하겠습니다~ 엄살은, 다들 빨리 준비하게. 네, 경위님! 허리를 통통 두드리는 각경사와 그를 재촉하는 수경사, 정의를 챙겨드는 라경장 옆에서 수사물품을 점검하는 덕경장, 그리고 과자가 든 통을 집어든 공경장은 차례차례 사무실을 나섰다.

 

 

 

정해시는 바다와 인접한 중소도시였다. 과거 어업이 융성했으나 청년인구가 대도시로 이동하면서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시골이었다. 그 중에서도 소명동은 해녀마을이라고 불릴 정도로 해녀가 많은 동네였다. 인구는 줄어도 여전히 물질을 하는 여인들이 마을을 지키고 있었다. 그런 마을에 약품공장이 들었다. 들리는 말로는 정해시의 특산품인 해조류에서 어떤 물질을 추출하여 의약품을 만드는 공장이라고 했다. 소명동 사람들은 아름다운 바다가 오염되는 것을 걱정하며 반대하였으나 정해시를 부흥시키겠다는 시장의 포부와 오랜 설득으로 결국 공장이 들어서게 되었다. 거기까진 좋았다. 그런데 공장의 하수처리장이 문제였다. 해녀들은 바닷물에서 이상한 냄새가 난다고 했고 물질이 끝나면 눈이 나빠진다며 각종 불편을 호소했으나 공장에서는 하수처리과정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일갈하였다. 그 때문에 해녀와 공장 간 갈등은 점점 심화되었고 그 사건은 며칠 전 조간신문 한쪽에 담기기도 했다. 초동수사보고서를 읽으며 잠경위는 이번에도 쉬운 사건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 시간을 달려 정해시에 도착하자 현지 경찰이 버선발로 달려나왔다. 피해자 곽두언. 35세. 약품공장 직원. 하수처리장에 빠져 사망. 어찌보면 단순했다. 제대로 보호시설이 설치되어 있지 않던 하수처리장에서 잠깐 부주의하다 실수로 발을 헛디뎌 일어난 산재. 딱 거기서 멈출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현지 경찰이 멀리 성화시까지 협조 요청한 데는 더 복잡한 어른의 사정이 숨겨져 있었다. 시장과 약품공장 사장은 서로 아는 사이였고, 사장은 이대로 공장이 묻히는 것을 두고 볼 사람이 아니었다. 분명 누군가 사건을 만들어낸 거라고 길길이 날뛰는 사장을 달래기 위해, 무엇이든 그가 납득할만한 범인을 만들어내기 위해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이었다. 토착 인구가 많은 현지 경찰은 정해시와 함께 늙었고 힘이 없었다. 돈줄을 잡아 시장의 편에 선 사람도 많았다. 수사반을 맞이한 경사는 민망한 표정을 지었다. 지저분한 일을 맡게 되었군. 그래도 한 번 해보자고. 잠경위는 미간을 찌푸렸다 폈다. 아휴, 우린 꼭 이런 사건만 담당하게 되더라~ 공경장이 툴툴대면서도 수사학의 별을 쥐었다. 그를 시작으로 모두가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사건 현장에 도착한 잠경위는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악취에 콜록거리며 하수처리장으로 다가갔다. 과연 난간 하나 제대로 설치되지 않은 시설은 대충 봐도 매우 위험해보였다. 이곳을 밤에 순찰했다면 더욱 사고나기 딱 좋은 환경이라는 답이 나왔다. 2인 1조로 야간경비를 한다는 말이 맞다면, 족적 두 개는 모두 공장 직원들의 것일 터였다. 무엇이 들었는지 상상하기조차 싫은 부글거리는 액체들 속에서 심각하게 훼손된 시신은 이미 옮겨진 후였다. 그렇다면 여기서 뭘 더 발견할 수 있을까. 잠경위는 수사학의 별을 꺼냈다. 세상이 푸르게 빛났다. 발자국 위로 사람의 형체가 그려진다. 누군가 걷는다. 걸음은 하수처리장 바로 앞에서 멈추고, 그 후의 흔적이 없다. 그 뒤로 다른 사람이 걸어온다. 그 역시 하수처리장 앞에 멈춰 서더니, 무언가에 놀라 통 안으로 빠져들어간다. 발버둥친다. 그러나 나올 수 없다. 벗어나려고 한 대상은 보이지 않는다. 단순히 약품에 당해서 나오지 못한 것인가, 혹은 무언가에 방해를 받은 것인가. 움직임은 사그라들고 피해자의 몸은 하수처리장의 배수구를 완전히 막은 채 멈춰버린다. 조금의 여과도 없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구멍을 닫아버린 채.

 

 

 

수경사는 피해자와 함께 야간경비를 섰던 공장 직원을 탐문하였다. 강두식 씨는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 자체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무언가 켕기는 게 있는지 수사에 방어적으로 임했다. 꼭 그냥 실족사로 끝나버리길 바라는 눈치였다. 수경사의 눈이 반짝였다. 보랏빛으로 새겨진 '두려움'이라는 글자를 결코 그냥 넘기지 않았다. 당신이 용의선상에 올랐다고, 협조하지 않으면 당신에게도 문제가 생길 거고, 그렇지만 사실대로 말하면 아무 문제 없을 거라는 부드러운 협박과 권고가 우물쭈물하던 강두식 씨의 입을 열었다. 그러게 왜 안하던 짓을 해선... 평소엔 그런 거 챙기지도 않던 놈이... 평소에 다른 점이 있었군요. 제길... 그래요, 여기 다니면서 한번도 입은 적 없는 방호복을 왜 갖춰입었는지 모르겠어요. 하구처리장에 뭐 숨겨두기라도 한 건지. 그것만 아니었으면 발이 미끄러질 일도 없었을 텐데... 아하, 그렇군요. 수경사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상냥한 미소로 강두식 씨를 보낸 수경사는 마침 지나가던 각경사를 마주쳤다. 각경사님, 뭐 찾으신 거 있나요? 어, 약간? 락픽을 돌리며 각경사가 답했다. 아무도 열어주지 않는 보안실 문을 슬쩍 따고 들어간 각경사는 역시나 제대로 된 여과장치도 없는 하수처리장의 부실함을 알아냈다. 어떤 독성이 있는지 다 알 수도 없는 약품들은 그대로 바닷속에 버려졌을 것이다. 지역 경찰도 함부로 못한 이유가 있었군. 공장의 문제가 드러나면 항의가 빗발칠 것이고, 결국 문을 닫아버리면 사장이나 시장이나 모두 손가락이나 빨며 감옥으로 오순도순 들어가게 될 것이었다. 높으신 분들의 사정이란. 혀를 차며 보안실을 나온 각경사는 이번에는 직원 탈의실에 들어갔다. 작업복과 방호복이 보관되어있을 사물함들이 노랗게 빛났다. 사장이 제대로 단속을 시켰는지 단단히 잠겨있는 터에 락픽으로 곽두언 씨의 사물함을 연 각경사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의 사물함에는 방호복이 그대로 있었다. 그럼 피해자가 입은 건 누구의 것이지? 곰곰히 생각하던 각경사가 이번에는 바로 맞은편에 있는 강두식 씨의 사물함을 열었다. 그의 방호복은 아무데도 없었다. 흐음... 일이 재밌게 돌아가는데. 각경사는 천천히 사물함을 닫았다.

 

 

 

라경장은 하수처리장의 배수구가 바다와 이어지는 곳까지 걸었다. 배수구에는 거품과 진녹색 액체가 말라붙어 있었다. 그 외에 다른 흔적은 없었다. 해조류가 엉겨붙거나 이끼가 낄 틈도 없이 독한 물질이었는지, 라경장은 혀를 내둘렀다. 제대로 조치하지도 않고 공장 돌릴 생각만 하다니... 분노에 주먹을 꽉 쥔 라경장은 일이 어떻게 되든 이 공장은 폐쇄시킬거라 굳게 다짐했다. 여기서 해녀들의 일터가 어느 정도 거리였더라... 라경장은 공장 쪽으로 올라가면서 거리를 가늠했다. 멀리서 해녀들이 물질을 끝내고 돌아오는 모습이 보였다. 어, 지금이 기회다. 라경장은 재빨리 스쿠터를 몰았다. 해산물이 가득 담긴 통을 나르는 것을 라경장이 도왔다. 갑자기 나타난 붉은 머리의 사내에 해녀들은 경계했지만 그가 묵묵히 짐을 들고 움직였기에 봐주는 듯했다. 눈까지 붉게 물들이며 한꺼번에 폭발적인 힘을 쓴 라경장이 백사장에 철푸덕 주저앉자, 대장격으로 보이는 해녀가 말을 걸었다. 보아하니 외지인인 듯한데, 자네도 경찰인가? 네, 그렇습니다. 물어볼 게 있나? 적어도 70은 될 것 같은 노인이었으나 두 눈은 형형하게 빛났다. 라경장은 쉽지 않을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는 정면으로 돌파하는 사람이었다. 하수처리장 사건에 대해 아는 게 있으십니까? 아니, 없네. 알아들었으면 더 괴롭히지 말고 돌아가. 해녀는 단칼에 잘라냈다. 아, 역시 이런 건 내 전문이 아닌데. 마른침을 삼킨 라경장의 눈에 덕경장이 들어왔다. 덕경장! 부르는 목소리에 번쩍 고개를 든 덕경장은 구조 신호를 보내는 라경장을 보고 한숨을 쉬며 다가갔다. 그는 감각들이 한 말을 돌이켜보는 중이었다. 과거는 이질적이면서도 익숙한 존재를 만나게 될 거라고 했다. 통찰은 슬픔에 진실이 덮혀 가려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민이 자연은 위대하고 인간은 그 앞에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하는 중에 직감이 저 깊은 바닷속에 뭔가 있다고 속삭였다. 설마 바다에 들어가야 하는 건 아니겠지. 지금 해도 다 졌는데. 주황빛 노을을 바라보던 덕경장은 잡생각을 떨쳐내며 달렸다. 제게 쏠린 수십쌍의 눈이 초감각의 것보다 더 묵직하고 서늘하게 짓누르는 것 같았지만 꾹 참고 대화를 걸었다. 어르신, 공장에 나쁜 짓을 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요? 하지만 그 말은 더 거센 폭풍만을 일으켰다. 공장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힘든지 아냐고, 다들 어디 한군데씩 무너진 채로도 돈은 벌어야 하니까 물 속으로 들어가는 거라고, 원래 대장이던 금복순 할머니가 눈이 나빠진 데 이어 오늘은 앓아누워 나오지도 못하셨다고, 가시 돋친 말을 쏟아내는 해녀들에게서 라경장과 덕경장은 도망치듯 멀어졌다.

 

 

 

공경장은 바닷가를 거니는 중이었다. 그는 공장과 해녀 간의 관계가 심상치 않음을 눈치채고 해녀에 대해 조사했다. 그런데 그의 백과사전이 알려준 내용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해녀가 물 속에서 해삼, 전복 따위를 캐는 직업이라는 것은 그도 잘 아는 사실이었다. 거기에 해녀는 바다의 생리를 잘 안다며, 밀물과 썰물에 대한 부연설명이 나오는 것이었다. 달의 인력에 따라 하루에 두 번 밀물과 썰물이 오는 것은 바닷사람이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백과사전에 등장한 이유는 뭘까.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백과사전은 쓸데없는 정보를 덧붙인 적이 없었다. 그렇다면 이 바다에 무언가 단서가 있다는 뜻이었다. 그걸 찾아내는 것이 바로 공경장이 할 일이었다. 바다와 관련된 여러 정보들을 떠올리던 공경장의 머릿속에 툭 하고 광하시의 이웃이 끼어들었다. 시청 직원이었던 그는 여름이면 해수욕장의 피서객들을 단속하느라 바빴다. 술 드시고 물에 들어가시면 안 돼요. 지정된 자리에서만 텐트 치실 수 있고요. 어, 불 피우시면 안 돼요! 그는 주말에도 돌아가면서 근무를 해야 했기 때문에 여름이 오면 한숨부터 쉬었다. 일하다 슬쩍 농땡이 피우면 안 되냐는 말에 내가 너랑 같냐며 왁왁대던 게 떠올라 조금 웃었다. 대신에 그는 휴가철이 다 지난 후에야 바다로 갔다. 그는 수영을 무척이나 잘했다. 하늘에서는 몰라도 바다에서는 내가 더 빠를걸. 그는 갈색 머리카락을 쓸어넘기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웃었다. 그건 정말이었다. 그는 물 속에서 자유로웠다. 인어들과 나란히 있어도 뒤지지 않았다. 그 때 정말 재미있었는데. 작게 중얼거리던 공경장은 문득 눈앞에 서 있는 여성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덜 마른 긴 머리가 아무렇게나 흘러내렸다. 그가 입을 열었다. 당신, 사람 아니죠?

 

 

 

진채영 씨는 25살의 해녀였다. 인간 세상에서는 그랬다. 반은 인간인데, 반은 인어였으니까. 진채영 씨의 아버지는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했다. 해녀는 아니었어도 고기를 낚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러다 인어인 진채영 씨의 어머니를 만났고, 그대로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인어의 손을 잡으면 물 속에서도 숨을 쉴 수 있다고, 공경장은 아주 오래 전 어머니가 읽어주셨던 동화책에 나온 이야기를 떠올렸다. 행복했던 세 가족은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뿔뿔히 흩어지게 되었다. 진채영 씨가 인간 세상으로 가고 싶어했기 때문이다. 처음에 어머니는 그를 말렸다고 했다. 몇 천년은 거뜬히 사는 종족이 백 년도 못 사는 종족을 만나면 얼마나 힘든지 다 겪어봤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뭍으로 올라왔다. 그는 인어를 사랑했지만, 인간도 사랑했으니까. 그들은 짧은 생을 살면서 저와 다른 모든 종족들에게 싸움을 걸고 자연을 파괴하고 시간을 낭비해요. 그럼에도 그들을 사랑하게 되는 이유가 뭘까요? 진채영 씨의 발에 모래가 닿았다. 공경장은 고개를 돌려 동료들이 있을 마을 위를 바라보았다. 천 년 전에는 이웃이었고, 천 년 후에는 동료인 이. 갈색 머리에 회색 눈을 하고서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인간. 공경장이 씩 웃었다. 인간은 그렇게 짧은 생을 살면서도 최선을 다해 살잖아요. 모든 것에 호기심을 가지고 모든 것에 이름을 붙이고 모든 것에 마음을 주고. 그러니 우리도 그들에게 정을 주게 되는 것이겠죠. ...그런가요. 진채영 씨가 씁쓸하게 웃는 것을 보며 공경장이 손바닥을 맞부딪쳤다. 자, 잡담은 이쯤하고 본론으로 들어갈까요. 제게 말을 건 이유가 있으시죠? 수경사만큼은 아니더라도 공경장도 이 정도 맥락은 이해할 수 있었다. 협조를 전혀 하지 않는 해녀 무리에서 떨어져나와 굳이 외부의 경찰에게 말을 거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것도 자기 정체를 알려가면서까지. 물론 공경장이 진채영 씨를 알아봤듯이 진채영 씨도 그를 알아봤겠지만, 이 세계에서 인간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꽤나 위험한 일이었다. 보수적인 20세기 한국 사회에서 정체가 알려지는 날에는 그 즉시 어디로 잡혀가게 될 지 모른다. 그럼에도 진채영 씨는 입을 연 것이다. 무언가를 밝혀내기 위해서.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

 

 

 

피해자의 사라진 장갑 한 쪽이 바닷속에 있을 거라는 추론은 합리적인 것이었다. 방호복은 화학약품에 완전히 부식되는 재질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가해자가 처리했을 텐데, 마을의 온 가구를 다 뒤져도 그런 장갑은 나타나지 않았다. 아마도 하수처리장의 배수구를 통해 바닷속으로 유입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만약 그 장갑이 있는 위치를 안다면? 잠경위는 진채영 씨를 바라보았다. 제가 찾을 수 있어요. 확신에 찬 목소리. 잠경위는 그에 진지한 목소리로 답했다. 당신이 범인으로 몰릴 수도 있는 일입니다. 알고 계십니까? 상관 없어요. 저는 범인이 아니니까요. 그리고... 바다는 쓰레기를 버리는 곳이 아니니까요. 단호한 두 눈동자를 마주한 잠경위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당신 혼자서는 안 됩니다. 반드시 1명 이상의 경찰이 동행해야 합니다. 하지만 경위님, 지금은 시간이 너무 늦었습니다. 지역 해양경찰들도 무리라고 할 텐데요. 맞아요 경위님, 이제 곧 밀물이 올 시간이라고요. 각경사의 말에 덕경장이 거들었다. 그게 답답했는지 진채영 씨가 한 걸음 더 다가왔다. 제가 찾을 수 있다니까요. 어떻게 그렇게 확신하십니까? 제가... 수영을 잘 하거든요. 저 믿으세요? 진채영 씨는 손을 내밀었다. 잠경위는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허리춤에 찬 수사학의 별이 반짝였다. 다부진 손은 물질한 경력이 오래되었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굳건한 표정은 진실을 담았다. 이를 재구성하면, 잠경위는 그를 믿는 것이 맞았다. 현장의 기억을 보는 사람도 있는데, 수영 잘하는 사람 정도야 있을 법하지. 잠경위는 제 손을 턱 얹었다. 경위님! 라경장이 벌떡 일어났다. 차라리 제가 가겠습니다. 아니, 내가 간다. 물 속에서라면 여기서 나보다 빠른 사람 없을걸. 잠경위가 여유로운 표정으로 웃어보였다. 그 표정이다. 천 년 전 바닷가에서 함께 놀면서 마주했던 얼굴. 수경사가 침음했다. 나 믿지? 빨리 다녀오세요, 지금부터 시간 셀 거예요. 공경장이 천연덕스럽게 대꾸했다. 그렇게 잠경위는 진채영 씨의 손을 잡은 채 바닷가로 달렸다. 노을도 사라진 밤하늘에는 하얀 별들이 반짝거리고 검푸른 바닷물은 끝도 없이 펼쳐졌다. 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사라진 것처럼 온 세상이 검고 푸르렀다. 잠경위는 날듯이 팔다리를 휘저었다. 잡은 손이 잠경위를 깊고 아름다운 바닷속으로 이끌었다. 숨 쉬는 것도 잊을 만큼 황홀한 광경이었다. 밀물로 몰려오는 물살을 헤치며 아래로, 더 아래로 내려가던 진채영 씨는 마침내 한 지점에서 몸을 멈췄다. 진채영 씨가 잠경위를 바라보았다. 잠경위도 진채영 씨를 바라보았다. 그는 천천히 바위틈에서 돌돌 말린 장갑을 꺼냈다. 틀림없이 피해자의 것이었다.

 

 

 

금복순 할머니는 자신이 저지른 짓을 순순히 자백하였다. 피해자의 방호복을 훔쳐 하수처리장 안에 숨어있다가 그를 놀라게 해서 하수처리장에 밀어넣고, 자신이 입었던 방호복을 범인에게 입히고, 배수구를 통해 물살을 따라 유유히 바다로 빠져나왔다고. 그 과정에서 눈이 나쁜 금복순 씨는 피해자가 아닌 다른 이의 방호복을 훔쳤고, 미처 끼우지 못한 장갑 한 쪽이 흘러나왔으며, 그것을 해녀, 그중에서도 대장격인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바다 깊숙한 곳에 숨겼다고. 하지만 그는 후회하지 않았다. 누구라도 해야 할 일이었다는 말에 잠경위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바다는 쓰레기를 버려도 되는 곳이 아닙니다. 금복순 씨가 잠경위를 바라보았다. 그럼, 뒤처리를 맡겨야겠구만. 그는 웃으며 떠났다. 해녀들이 그를 따랐다. 쏟아지는 눈물을 참으며 경찰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무리 중에는 진채영 씨도 있었다. 이런 방법이 아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한숨처럼 터져나오는 말을 누구도 막지 못했다. 그러나 미스터리 수사반은 할 일이 있었다. 금복순 씨가 말했던 것처럼, 남은 쓰레기들을 처리해야 할 시간이었다. 공장의 그 누구도 도망갈 수 없었다. 바다는 영원히 흐르고, 인간은 유한하니까.

 

 

 

하룻밤 묵고 가라는 말에도 사양하고 수사반은 밤길을 달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공경장이 뜬금없는 말을 꺼냈다. 그러고보니 경위님은 언제부터 수영을 잘 하셨어요? 나? 태어날 때부터지. 에이, 그런 말 말고요. 자신감 넘치는 잠경위의 말에 공경장이 툴툴거렸다. 맞아요, 경위님 수영하시는 모습 보고 깜짝 놀랐다니까요. 전에 선수였던 거 아니에요? 비행기 태우지 마, 덕경장. 그러면서도 잠경위는 은근 기분 좋은 표정이었다. 빈말은 아닙니다. 바다 수영이 쉬운 건 아니잖아요. 그러게요. 게다가 밤바다를 그냥 들어갈 생각을 다 하시고. 옆에서 그 표정을 흘끗 본 각경사가 한 마디 거들었는데, 수경사가 웃으며 말하는 바람에 잠경위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민망한 표정을 짓던 잠경위가 사안이 급한데 어쩔 수 있냐고 둘러댔다. 하지만 수경사가 은은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뒤통수에 꽂히자 결국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어쩔 땐 경위님이 저희들보다 더 무모하시다니까요. 맞습니다. 지난번에 신뢰평가 깎인다고 절 말리던 모습은 어디 가셨는지... 그건 진짜 위험했으니까 그랬지! 수경사의 말에 라경장이 흐린 눈으로 덧붙이자 잠경위가 발끈했다. 그러니까 경위님도 조심하시라고요. 다섯이 입을 모아 잠경위에게 말했다. 아, 알았다니까. 잠경위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공경장은 그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늘 사고치지 말라고 꾸중하던 사람이 얌전히 말을 듣고 있는 건 귀한 구경이었으니까. 천 년 전에도 네가 늘 우릴 혼냈었는데. 우린 지지리 말도 안 들었고. 공경장이 차창 밖을 내다보았다. 까만 하늘에 별이 반짝였다.

 

 

 

어디 가? 응. 진채영 씨는 짐가방을 챙겨들고 집을 나서다 친구를 만났다. 같이 물질도 했던 해녀 동료였다. 그가 인간을 사랑하는 것과 별개로 그는 인간을 배신한 셈이었다. 그렇기에 여기 더 있을 수 없었다. 어디로 가는데? 바다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진채영 씨는 대책없는 말을 시원하게 던져 놓고는 웃었다. 바다는 어디에나 있으므로 진채영 씨는 어디로든 갈 수 있다. 가다가 가다가 정 갈 곳이 없으면 바닷속으로 들어가도 되었다. 어머니도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어떻게 보면 위태로운 진채영 씨의 앞을 막은 친구는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나도 같이 가. 왜? 그냥. 등잔만큼 커진 진채영 씨의 눈을 피하며 친구가 짐을 나눠들었다. 괜찮겠어? 나 진짜 아무데나 갈 거야. 어디 묵을지 정해둔 곳도 없어. 알아. 넌 그런 애니까. 그런데도 나를 따라가겠다고? 아, 그만 좀 물어봐! 친구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나 뭐 없는데. 돈도 별로 없어. 가진 건 옷 몇 벌이 전부야. 가방 열어봐도 좋아. 어떻게든 그를 말리려는 진채영 씨의 말에 친구가 작게 중얼거렸다. ...네가 있잖아. 뭐라고? 못 들었으면 됐어! 그렇게 느리작대서 어느 세월에 갈래? 친구가 진채영 씨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러다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진채영 씨가 눈을 깜빡거렸다. 그러곤 이내 웃었다. 그래, 가자. 어둠이 걷히고 태양이 떠오르는 시간이었다. 곧 있으면 오늘의 첫 밀물이 시작되겠지. 바다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를 파도를 밀고 또 밀고, 그 속에서 게와 소라와 조개들이 뻐끔뻐끔 숨을 쉴 것이다. 빛에 가려진 달이 열심히 일하는 동안 태양은 푸른 하늘 위에서 희게 반짝이겠지. 세상에서 가장 밝은 별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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