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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처럼 일렁이고 울렁이는

w. 아작 (@ajak0601)

서라더는 가난했다. 

 

그렇다고 딱히 드라마틱한 사연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태어날 때 부터 그래왔고 그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 

 

그가 그것-뼈저리게 불우한 생활-이 당연한 것이 아니란 사실을 처음 안 것은 그가 초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였다. 

 

남들이 다 가는 견학을 혼자 못가고, 준비물을 가져올 때 같이 사는 사람의 낡아빠진 물건으로 가져가야 했을 때.

 

그 때부터 자신의 환경이 남들과는 다르다-그것도 나쁜쪽으로-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중2 때에는 자신이 사는 곳이 마치 드라마 속에 감옥과도 같이 생겼다고 생각했다. 중2병이라고 하기에는 그의 고아원과 감옥은 너무 닮아있었다.

 

그리고 여태까지 자신의 우울을 벗어나 꼭 행복해지자 다짐한 것은 고2 언저리 쯤. 

 

그때로부터 십여년이 지난 지금의 서라더는 조금은 무뚝뚝했지만 적어도 우울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우울을 이겨내려 애썼고, 결국에는 정말 이겨냈다. 여전히 가난했지만 어쨌거나 그에게는 어엿한 직장이 생겼고 가난을 이겨내리라는 열정도 여전했다. 

 

그리고 서라더가 김각별과 엮이게 된 것은 그 때 쯤이었을 것이다.

 

 

 

 

 

김각별은 오묘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주 미소지었고, 눈물을 흘렸으며, 깜짝 놀라곤 했지만 그럼에도 어딘가 텅 비어보여서 이질감이 드는 그런 사람. 

 

서라더가 그와 처음 만나 인사를 할 때의 날씨는 정말 추웠고, 뒤통수 너머 보이는 풍경은 철퍽대는 파도였으며... 서로의 머리칼에 새하얀 눈송이가 듬성듬성 떨어지던. 그는 그 때 각별을 보고 무언가를 떠올렸다. 그게 음-

 

겨울바다. 

 

그래. 그는 당장 뒤통수에 보이는 그 풍경이 각별과 참 닮아있었다고 생각했다. 차갑도록 시린 겨울바다는 고독해보였고. 그럼에도 계속 울렁거리는 것이 참 불완전한 존재같아서. 

 

그가 지금한 생각을 남들에게 말한다면 네가 연예인에 대해 뭘 아냐며 비웃음이나 사겠지만 뭐. 

 

어쨌거나. 더 정확한 감상평을 말하자면 각별은 어딘가 우울해보이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만약 누군가가 각별의 초상화를 그리라 명령한다면 그는 한치의 고민도 없이 안광없는 눈과 대비되는 웃는 입을 그리며 만족 할 정도로. 각별의 눈빛에는 생기가 없었다. 분명 그의 입은 웃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다고 서라더가 그에 대해 그리 깊게 생각하려 하진 않았다. 항상 서라더의 김각별 감상문은 사실 어차피 일인데 공적인 스케줄이 아닌 이상 별로 남에게 신경쓰고 싶지도 않고- 로 끝나곤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미 그는 아주많이 김각별을 의식하고 있었음에도, 계속해서 그 사실을 부정했다. 우정이라는 것은 쓸데없이 복잡하고 그 대상이 자신이 담당하는 아티스트라는 것은 더 번거로운 일이라고 생각하며.

 

서라더는 그렇게 김각별의 대한 회상,이라는 쓸데없는-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잡생각을 멈춘 채 집을 나섰다.

 

-

 

서라더와 김각별. 매니저와 아티스트 관계. 매일을 함께하고. 일정을 공유하고. 적어도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사이라는게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면 그 무엇이 특별할까. 

 

그럼에도 모순적인 말이지만, 적어도 김각별에게 서라더는 그리 특별하지 않았다. 아니 냉정하게 말하자면, 음. 주변인물-이라는 그가 만든 바운더리의 기준 안에도 채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가깝지 않은 그런 사이. 일을 함께하는 사람. 애초에 서로가 서로에게 자신의 그 무엇도 보여주려 하지 않았다. 

 

적어도 서라더가 자신의 생에서 가장 충동적인 말을 내뱉기 전 까지는.

 

 

 

 

 

하필이면 추워죽겠는데 겨울바다에 와선- 그가 속으로 한참을 투덜대며 주머니 속의 핫팩을 주물거렸다. 안타깝게도 그는 배우였고, 오늘의 촬영지는 겨울바다였으며, 김각별은 겨울바다를 매우 싫어했다. 짜증나도록 시리고 조용하고. 또 고독하고. 마치 자신이 꽁꽁 숨기고있던 우울과도 같아보여서. 시린 바다의 온도가 살결을 맴도는 것이 꼭 공허와도 같아서. 

 

그가 애정을 받아야 하는 직업을 선택한 이유도 그래서였다. 자신의 공허함을 채워주길 바래서.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공허했다. 사람들에게 받는 애정은 지나치게 따듯해서 데일 것만 같았다. 아아, 또 우울해진다. 그가 애써 생각을 멈추고 자신의 매니저에게 다가갔다. 

 

라더씨.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던 서라더가 각별의 목소리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뭐하고 계셨어요? 각별의 물음에 라더가 고개로 바다를 가리켰다. 겨울바다 좀 보고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뻔한 답변. 각별은 괜시리 더 우울해진 기분이 들었다.

 

겨울바다는 참 공허해요. 시리고. 또 고독하고. 짜증나도록 아름다운게. 아,음,너무 쓸데없는 말이었네요. 못들은 걸로 해줘요. 각별이 자신도 모르게 말을 늘어놓다가 괜히 변명섞인 말을 덧붙였다.

 

그런가요. 또 뻔한 답변. 각별이 괜히 어색해져 자리를 벗어나려던 순간이었다. 

 

각별씨는 참 겨울바다 같습니다. 라더가 말을 덧붙였다.

 

그것은 서라더가 처음으로 김각별에게 비친 속마음이었고. 오직 서라더의 충동에 의해 뱉어버린 것. 그럼에도 가까워지는 것이 두려워 계속 생각만 했던 것. 웃기게도 그것에는 자신이 아이 때나 전하던 뜻이 숨겨져 있기도 했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전혀 겨울바다 같다-는 말 따위에 숨겨두지 않는 뜻.

 

.....제가 친구가 없어서 그런데, 원래 친구.....하자는 말을 이렇게 돌려서 합니까? 

 

글쎄요. 저도 친구가 있어본 적은 없어서.

 

각별의 마음이 파도처럼 일렁댔다. 일렁이고. 울렁이고. 철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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