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안의 바다
w. 환타 (@hwanta0719)
김각별. 툭 치면 부서져 사라져버릴 그 이름을 불렀다. 먹먹한 그의 목소리가 파도에 먹혀들지 않을 만큼 소리쳐 불렀다.
정공룡은 무슨 자신감인지, 어디서 난지 모를 작은 배를 타고 떠나버린 멍청한 제 친구의 이름을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생존자다.
도대체 어쩌자는 건지, 뒤를 부탁한다며, 이 생지옥에서는 더 못 있겠다며.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쪽지만 남겨두고 떠나버린 친구를 오늘도 잊지 않으려 기억해낸다.
정공룡은 쪽지를 다시 꺼냈다.
멍청이
드문드문 끊겨있는 글씨 아래 비교적 최근에 쓴 세 글자가 눈에 들어왔다. 물론 정공룡이 쓴 것이다. 꾹꾹 눌러 썼는지 글씨가 진하다.
환상 같은 이야기지만, 이 세상에는 불과 일주일 전만 해도 좀비들이 우글거렸다. 그래서 김각별은 그것을 견디지 못 한 것이고. 떠난 것이고. 지금은 좀비 따위 전혀 없다. 가끔 있다고 해도, 시체와 같은 잔해 정도 뿐이다.
그것들은 정말 마법처럼 사라졌다. 하루아침에, 정말로 마법같이.
그래서 정공룡은 김각별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얄팍한 희망을 품고 바닷가에 앉아있다. 파도가 거세게 몰아친다. 이런 날이면, 김각별은 날씨 한번 더럽다며 욕지거리를 내뱉곤 했다. 아주 가끔이지만.
해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칙칙하고, 어둡고 여러모로 우울하다.
한번 파도가 내리치면 산산이 조각나 버릴 것만 같던 배를 타고, 걔는 어디로 갔을까.
김각별에게 참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기껏해야 좀비가 우글거리던 세상에서 5개월 정도 버틴 게 다이다. 그래도 이 정도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아무것도 모르겠어. 깨질 것 같이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정공룡은 모래사장 위에 털썩 누워버렸다. 옷 속에 모래가 들어가 까슬거렸지만 딱히 상관할 건 못 되었다.
김각별이 썼었던 별 모양 머리 끈을 꾹 쥐었다. 동시에 물방울이 볼 위로 떨어져 흘렀다.
눈을 뜨자 보인 것은 시커먼 먹구름이었다.
더 이상 이 모래사장에 있을 순 없었다. 곧 비가 내릴 것이다. 폭풍이 몰려오면 김각별은,
그만. 정공룡은 작게 중얼거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내 일어났다. 빗줄기가 거세지기 전에 빨리 자리를 떠야 한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친구의 마지막 순간을 두고 모래사장을 유유히 걸어 나갔다.
오늘도 정공룡은 바닷가에 앉아 있다.
눈을 꾹 감고 불어오는 바닷바람을 맞으며.
하늘이 눈부시도록 청량해서, 햇살이 따듯해서. 불어오는 바람이 선선해서-
아, 이 순간에 네가 함께 있었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조금만 기다리지 그랬어, 조금만 더. 꽤나 괜찮은 엔딩이었을 거야, 아무래도.
그러니까,
눈에 담긴 바다가 흘러넘쳐 떨어졌다. 처음만 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김각별이 없어도 정공룡의 인생은 잘만 굴러갔으니까.
그새 미운 정이라도 들었나, 허전했다.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인데 얼굴이라도 비춰주지, 섭섭하게.
정공룡은 다 포기하기로 했다.
어려웠다.
정공룡은, 놀랍도록 긍정적인 사람이니까, 포기는 할 수 없었다. 혹 그것이 희망을 보인다면 더욱.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붙잡고 놓아주지 않는 사람, 그래서 포기하지 못 하는 사람.
정말로 모두 놓아버리면 김각별이, 멍청이가. 친구가, 거센 파도에 휩쓸려버릴 것만 같아서.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루하루, 이 정도면 정말로 오래 기다렸다.
"..!"
정공룡은 신발을 벗는 것도 잊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분명 유리병이다. 반짝였다, 햇살을 받아서. 윤슬과는 또 다른 이질적인 반짝임이 분명 있었다. 김각별이 보내 온 편지일까? 물 속을 이리저리 헤집으며 유리병을 찾았다. 누군가가 이 모습을 보았다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거다.
찾았다, 정공룡은 병을 움켜쥐었다.
뚜껑이 잘 열리지 않았다. 공룡은 괜스레 마음이 급해졌다. 물기를 옷에 대충 닦고 다시 시도했다. 뚜껑을 열곤, 재빨리 두루마리를 꺼냈다. 만화 속의 한 장면 같았다.
김각별이 아니라면 매우 실망하겠지만 일단 풀어 보아야 안다. 정공룡은 흐린 초점을 애써 맞추려고 노력해 한 글자, 한 글자 읽어 내려갔다.
곧갈게기다려.
종이가 눅눅했다.
정공룡은, 반쯤 포기했었다. 그 폭풍 속의 바다는 살아서 빠져나오기 어려웠으니까.
연필은 어디서 구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종이도, 유리병도.
정공룡은 이 편지의 주인이 김각별이라고 믿고 싶었다.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지옥을 피하려 지옥으로 도망가버린 멍청이가 걔 말고는 몇 없을 테니까.
공룡은, 자신이 행운아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이 편지를 어떻게 받았겠는가.
제 친구는 오고 있을 것이다.
약속 하나는 기깔나게 지키던 애였다.
그러니까-
-.기다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