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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문명

w. 니코틴 (@penalty_sound)

이어진 손, 다채로운 세계. 지하의 문명은 습하고, 따뜻했다.

 

 

 

 

 

 

 

 

 

 

 

지하문명

w. 니코틴

 

 

 

 

 

 

 

 

 

 

"똑똑! 계세요~?"

 

 

 

익숙하고 발랄한 목소리에 수현은 현관문으로 다가갔다. 네, 누구신가요? 문 앞에 있을 게 누구인지 이미 알지만서도, 천연덕스레 누구냐며 물으며 문을 열자 어린아이 몇 명이 각양각색의 분장을 하고 서 있었다. 호박 모양 바구니를 두 손으로 꼬옥 들고 있는 모습이 제법 깜찍했다.

 

 

 

"아이쿠, 깜짝이야! 진짜인 줄 알고 아저씨 엄청 놀랐네?"

 

"헤헤, 성공이다!"

 

"과자 안 주면 장난칠 거예요!"

 

"자, 여기~"

 

 

 

사탕과 초콜릿, 캐러멜 몇 개에 순식간에 복작복작해지는 분위기는 조금 습하고, 따뜻했다. 무너지는 써니 사이드 타운을 탈출한 것도 벌써 몇 년 전의 일. 그들이 미처 챙기지 못했으나 잠뜰과 덕개가 살려 두었다는 교사 로봇이 데리고 함께 탈출한 이 아이들은 수현에게도 낯이 익었다. 건물에서는 마주칠 일이 없긴 했지만, 다들 도희의 친구들이었고, 그런 도희와 수현은 특별한 '공통점'이라는 것이 있었기에. 자연스레 자주 마주칠 수밖에 없었던 탓이었다.

 

 

 

이들 중 몇몇은 친구나 가족을 잃었을 터이지만, 그래도 혼자가 아니고, 웃음을 잃지 않은 듯하여 다행이었다. 그래, 참 다행이지. 태양이 인류를 저버리고 지하에 새로운 도시가 세워져도. 문화는 이어졌고… 또 다채로웠다. 마녀, 빨간 망토, 프랑켄슈타인…. 어라, 그런데.

 

 

 

"도희는 분장 안 해?"

 

"네! 저는 이대로도 충분하잖아요."

 

"… 그렇, 구나."

 

"……."

 

 

 

아, 이 어린아이는 어째서. 어딘지 아득했다. 그 잠시 목이 메었던 것을 눈치채기라도 했는지 도희는 인자하게 웃어주는 수현을 빤히 쳐다보다 친구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희 먼저 가, 나 아저씨한테 할 얘기 있었는데 깜빡했다."

 

"응? 그래?"

 

"그럼 이따 다크서클 아저씨 집 앞에서 만나자."

 

"응, 먼저 가 있어~"

 

 

 

다크서클 아저씨는 아마 타운의 관리자였던 각별을 칭하는 호칭인가, 그런 생각을 하며 수현은 먼저 발걸음을 옮기는 아이들의 뒷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도희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도희야, 할 얘기라니?"

 

 

 

분장을 하지 않았음에도 얼굴 반쪽이 시커먼 아이. 도희 거짓말 한 어린아이 특유의 머쓱한 반응을 보이며 우물쭈물 입을 뗐다.

 

 

 

"사실, 할 얘기가 있었던 건 아니구… 아저씨가 할 얘기 있어 보여서요."

 

"… 응?"

 

 

 

전혀 예상치 못한 얘기에 수현이 벙쪄 있자 도희는 수현이 모른 척하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이런저런 설명을 덧붙였다.

 

 

 

"저, 오빠가 연기도 하고… 그래서 오빠가 거짓말 많이 하니까, 그런 거 잘 알거든요. 저 눈치 빨라요."

 

"……."

 

"저한테 하고 싶은 말 있는 거 맞죠?"

 

 

 

도희의 한 쪽 눈동자가 샛노란 색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아, 이래서 눈치 빠른 어린이는. 수현은 어린아이를 속이려 했다는 기분에- 그것이 도희를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괜스레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도희야, 음… 일단 들어올래?"

 

 

 

 

 

 

 

* * *

 

 

 

 

 

 

 

"자, 코코아."

 

"감사합니다-"

 

 

 

참 인사성도 밝아…. 남매가 제법 닮았나. 회피성 사념이었다. 지금부터 할 이야기는 정말 하고 싶은, 그러나 하지 않으려 했던. 사실 해도 되는지도 잘 모르겠는 그런 이야기였기 때문에. 그러나 이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또 그 뿐이었고…. 그건 아직 꽤 어리고 미숙한 대학생인(과거형이지만) 그에게는 너무 큰 책임일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아이가 눈치채고 물어오니까. 수현은 입을 열기로 했다.

 

 

 

"도희야. 써니 사이드 타운에서 학원 다니던 때, 기억 나?"

 

"기억나죠. 지금 친구들 다 그때 같이 다니던 애들인걸요?"

 

 

 

그래, 그렇겠지. 이 문명은 그 곳에서 살아서 탈출한 이들의 피난처. 그것을 생각하자 어떤 뿌듯함과 그 아래의 슬픔, 그리움, 그리고 괴로움이 떠올라 웃기 어려웠다. 이어질 얘기는 함부로 꺼내서는 안 되는 말. 그것을 수현은 어른이라는 용기를 내어 꺼냈다.

 

 

 

"아저씨도 그렇지만… 도희도 그때랑은 모습이 많이 변했다. 그렇지?"

 

"그렇죠."

 

"도희는 지금 도희 모습을 어떻게 생각해?"

 

"……."

 

 

 

수현의 말에 도희는 눈을 깜빡이며 잠시 생각했다. 거울 대신으로 수현의 얼굴을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음, 제 모습이라….

 

 

 

"멋있다? 까리하다?"

 

"까리… 그,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을까?"

 

"라더 아저씨랑 공룡 아저씨가 이런 건 까리하다고 하는 거라던데요."

 

"… 아, 음."

 

 

 

도희의 입에서 튀어나온 익숙한 이름들에 수현은 금세 납득했다. 그야 그 사람들은 수현에게도 늘 같은 말을 해왔었고. 원래 그런 사람들이지. 그렇게 문제 될 말은 아니니까 그냥 내버려 둬도 될 것 같아 수현은 대충 넘겼다.

 

 

 

"아무튼… 그래, 그… 멋있다고도 볼 수 있지."

 

"아저씨도 멋있어요!"

 

"어, 으응. 고마워. 도희도 멋있어."

 

 

 

멋있다는 말에 기분이 좋아진 도희를 보며, 수현은 마지막으로 한번 더 망설였다. 그래도, 스스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이 정돈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도희야."

 

"네?"

 

"피부가 까만 부분이라던가, 노란 눈이라던가… 그건 우리의 모습인 거지?"

 

"그으… 렇죠?"

 

 

 

조심스러워지는 수현의 말투에 도희도 무언가 눈치챘는지 코코아를 마시던 것을 멈추고 진지한 눈을 했다.

 

 

 

"도희는 이게 분장 같은 거라고 생각할까? 따지거나 다그치는 게 아니라, 도희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거야."

 

"어, 으음…."

 

 

 

도희는 의자가 높아 바닥에 닿지 않는 다리를 대롱대롱 흔들었다. 고민하고 있다는 신호였다. 이건 내 모습이고, 아저씨의 모습이고… 이건 우리 모습. 새까만 피부, 묘한 노란 눈….

 

 

 

"분장은… 아닌 것 같아요."

 

"맞아, 우리는 분장을 하지 않고도 이렇게 생긴 거지."

 

 

 

분장을 하지 않고도. 그 말에 도희는 왠지 수현이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 건지 알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이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

 

 

 

"할로윈 분장은 원래 무서운 괴물을 흉내 내는 거잖아? 물론 요즘은 다른 분장을 하기도 하지만… 이건 있는 그대로의 우리 모습이니까, 아저씨는 도희가 이 모습을 할로윈 분장처럼 여기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러지 않으면, 제가 제 모습을 무서운 거라고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 그렇지, 도희는 똑똑하네."

 

"헤헤,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요."

 

 

 

도희는 몇 모금 남지 않은 코코아를 한 번에 들이켰다. 음, 달콤하다. 진득한 부분은 컵 밑바닥에 들러붙어 입 안으로는 들어오지 않았다. 기운차게, 그래도 컵이 상하지 않게 코코아 컵을 내려놓은 도희는 폴짝 뛰듯이 의자에서 내려왔다.

 

 

 

"그럼 저 무슨 분장 할까요?"

 

"글쎄, 도희는 어떤 분장이 하고 싶은데?"

 

"도희 같은 거!"

 

 

 

도희 같은 거? 도희 같은 거라…. 수현은 잠시 생각하는가 싶더니 곧 제법 그럴듯한 아이디어를 내놨다.

 

 

 

"음, 용감한 공주님?"

 

"좋아요! 그럼 아저씨는 백마 분장 하면 안 돼요?"

 

"응? 아, 아저씨도 하는 거야?"

 

"분장… 안 해요?"

 

 

 

방금 분장 하자면서…. 그렇게 말하는 듯한 도희의 눈에는 배신감 같은 것이 담겨 있어서 수현은 차마 아이 상대로 거절할 수가 없었다.

 

 

 

"아저씨는 원래 그런 거 안 챙겼… 아, 아니야. 그래, 하자…."

 

"좋아요, 얼른 가요!"

 

 

 

아이의 잡아끄는 손길은 얼마든지 뿌리칠 수 있는 것이었으나 수현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어진 손, 다채로운 세계. 지하의 문명은 습하고, 따뜻했다. 그건 있는 그대로의 그들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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