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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미라클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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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피 할로윈은 개뿔이. 잠뜰은 하나도 해피하지 않았다. 기이한 망토나 분장을 하고선 저마다 즐거워 웃는 사람들의 면전에 대고는 바락바락 따지고 들고픈 기분이었다. 낫 해피 낫 해피. 오케이? 그렇지만 나 박잠뜰 꽤 개념 있는 퇴마사. 디스 랩 마냥 쏟아지는 낫 해피의 향연에도 잠뜰은 입을 꾹 닫고 참아냈다. 웃음에는 죄가 없었다.
“오늘 죽은 사람이 돌아온다고?”
작은 거북이의 모습으로 내내 사무실 구석에서 뒹굴 거리던 거북신이 외출 후 돌아온 제게 헐레벌떡 다가와 물은 그 말에 잠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 제 의뢰인과 저가 하는 이야기를 들은 터였다.
제 여동생이 작년에 죽었어요. 할로윈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날이라던데, 여동생을 만날 방법이 있을까요? 대충 이런 말을 꺼내놓고 훌쩍이는 의뢰인을 향해, 잠뜰은 함께 눈시울을 붉히기는커녕 벌떡 일어나 몸 상태를 핑계로 의뢰를 거절했다.
그렇다면 할로윈에 죽은 이가 돌아오는 것은 맞는지, 그것만이라도 알게 해달라며 애원하는 의뢰인의 뒷말은 못들은 척 했다. 답하기엔 아픈 곳이 너무 많았다. 사실 아프다며 내놓은 핑계는 핑계만이 아니었는지.
거실 한구석에 가지런히 놓여있는 노란 부엉이 액자 사진 하나를 그대로 엎어놓은 잠뜰은 제게 당장이라도 무언가 묻고파 보이는 거북신을 애써 무시하며 외출에 나섰던 것이었다.
“잠뜰아?”
저도 모르게 인상 찌푸린 잠뜰을 향해 거북신은 다시 고개를 기울였다. 그 얼굴에 쓰인 부정이 저절로 읽혀서 이내 탄식하며 물러나긴 했지만, 그럼에도 다시 돌아가기 시작한 잠뜰의 생각을 멈출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어르신.”
“아니야, 대답할 필요 없다.”
“각별이는 못 와요.”
각별이는 절대로 못 와요. 온갖 나쁜 귀신 다 몰리는 날에 걔만은 여기로 못 와. 잠뜰이 웃는다.
“기적이 있지 않는 한.”
***
할로윈은 죽은 사람이 돌아오는 날, 그러나 죽은 날까지 도사리는 차별 아래에 잠뜰과 같은 퇴마사들, 귀신 보는 이들은 할로윈을 그렇게 정의했다. 악령의 날. 그러니 정리하자면 각별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악령이 되기에 각별은 눈에 띄게 착했고, 심지어는 소멸했으니까. 저승 일 따위 어찌 확신하겠냐마는 이거 하나만 확실했다. 각별은 오지 않는다.
“미친.”
그렇다고 다른 놈이 오기를 바란 건 또 아닌데.
잠뜰이 제 눈을 비비며 가지런히 놓여있던 월광검을 스윽 집어 들었다. 영 좋지 못한 말이 툭툭 튀어나왔다. 이 사람이 왜 여기 있지? 따지고 보면 사람도 아닌 것에 잠뜰은 드물게 놀랐다. 귀신을 보고 이렇게까지 놀란 것도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충격적이었고, 제 앞 귀신 또한 당황한 듯 난감한 얼굴이었으나 잠뜰은 결코 경계를 늦출 수 없었다. 다른 놈도 아닌, 공룡이었다.
“그쪽이 왜 여기 있어요?”
조금 불투명한 몸 하며, 마지막으로 본 그때의 착장까지 그대로인 공룡이 제 눈앞에 덩그러니 서 있었다. 발이 땅에서 5cm정도 떨어진 모양이 아니었다면 귀신인 줄도 모르고 비명을 질렀을 것 같았다.
공룡 또한 제 앞에 나타나게 될 줄은 몰랐는지 꽤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는 잠뜰의 물음에 오물오물 입을 뻐끔거리더니 이내 미간을 좁히며 한숨을 내쉬는 듯 했다. 죽었어도 한숨도 쉬네.
“나도 모르겠는데.”
“아, 악령이라 그런가.”
“악령?”
“왜 아닌 척 해요. 악령 맞으면서.”
“......”
무언가 할 말이 많은 표정을 한 공룡이 침묵했다. 그러더니 제 손과 발을 내려다보며 미묘한 감탄이나 내뱉었다. 왜, 다시 살아있는 기분도 나는 모양이지. 잠뜰은 그가 곱게만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또 죽일 듯이 미운 것은 아니었고. 다시 말하자면 가진 감정은 또 죄책감에 가까우면서도 가끔은 그런 자신이 싫어 짜증이 났다.
대신 살아난 아이. 살아남았다는 수식어 앞에 붙는 대신이라는 단어가 잠뜰을 정직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기분이었다. 물론 그게 죄라고는 생각 않았다. 잠뜰이 살았든 그의 아이가 살았든. 어쨌든 딜레마에 가까운 상황이었고, 저는 어린아이였을 뿐, 그 어떤 악의도 살의도 갖고 있지 않았다. 생존은 죄가 아니었으므로. 그렇다면 정공룡 당신 생각은 어떨까.
“왜 왔어요? 다시 퇴마 당하고 싶어서?”
“그럴 리가.”
“못 본 사이에 말이 짧아지셨네요.”
“나이는 내가 훨씬 더 많잖아.”
“하긴.”
“그러니까 이제 반말하려고. 괜찮죠, 퇴마사님?”
싱글벙글 웃는 그 얼굴이 밉지는 않아서, 무엇보다 주먹 들고 일어날 기력조차 없는 잠뜰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따지고 보면 각별이도 나한테 반말을 들을 나이는 아니었겠구나. 실없는 생각만 났다. 공룡은 그런 저를 창백한 낯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근데 정말 왜 왔냐니까요.”
“용서도 구하고, 퇴마사님.......얼굴도 보러?”
“나한테 그쪽이 용서를 왜 구해요? 내 얼굴은 뭣 하러 보고?”
“얼굴 보러 왔다는 쪽은 좀 이상해도, 용서 구하러 왔다는 말은 그럴듯하지 않나? 지은 죄가 많은데, 나.”
“알아서 다행이네요.”
피식 웃은 잠뜰이 앉아있던 벤치에서 기지개를 켜며 공룡을 훑어보았다. 수상한 기색 없음, 살의, 악의, 무기 모두 없음. 위험도 0% 경계할 필요는 없겠네. 그렇게 결론 내린 탓에 긴장이 풀린 탓이었다.
한적한 밤 공원에는 고장 난 가로등만 깜빡였다. 날벌레를 쫓기 위해 손만 휘휘 내젓던 잠뜰은 문득 멀뚱히 서있는 정공룡을 향해 눈짓했다. 옆에 앉아요. 그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소멸한 걸로 아는데, 어떻게 잘 찾아왔나 봐요.”
“아. 그러게. 나 소멸했지.......”
“아들은요, 만났어요?”
“아직.”
“뭐야. 아들이나 만나러 가지. 왜 나한테 왔대.”
그 말에는 공룡이 웃었다. 그게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서. 아마 만나러 가겠지. 본인 일을 왜 남 일처럼 말해요.
의아함에 고개 기울이던 잠뜰이 이내 귀찮은 듯 고개를 돌리고 몸을 늘어뜨렸다. 아, 됐어. 저승일에 더 관여하기 싫으니까 여기까지. 그러자 공룡은 한 번 더 웃었다. 못 본 사이에 웃음이 많아졌다고, 잠뜰이 생각한다.
“.......저기,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어떻게 온 건지는 나도 몰라.”
“아니 그거 말고.”
“........”
“악령.......악령이라 여기 올 수 있었던 거죠?”
당신은 악령이니까. 지은 죄가 많으니까. 착하게 살지 않았으니까 여기 있는 거죠? 겉으로 들리는 것과 속으로 담은 뜻이 달랐다. 그러니, 잠뜰은 이렇게 묻고 있었다. 각별이는 못 와요?
귀신과 악령, 할로윈에 최적화 된 지식 한가득인 전문직을 가진 주제에 묻는 그 질문이 멍청하게 보이기는커녕 안쓰러웠다. 이미 희망도 뭣도 없는 눈으로 묻는 것이 궁금증이라기보다는 형식적인 안부인사와 같아 보였다.
각별이는요? 걔는 잘 지낸대요? 공룡은 대답하지 않았다. 잠뜰은 울지 않는다. 슬퍼하지도 않는다. 그게 딱 좋았다. 어차피 제로라면 마이너스로 살면 됐다. 그러면 제로에도 안주할 수 있었다.
기뻐하고 행복하지는 못하겠지만. 제 멘탈 꼭 잡고 낙심하거나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무덤덤하고,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일상생활 도중 간간히 떠오르는 그 부엉이 생각은 절대로 억제하지 않는다.
기대치 않으니 가능한 것이었다. 잠뜰이 이 일을 해내며, 그 일을 겪으며 했던 생각이 무어인지 아는가? 기적은 없다는 것이었다.
그게 얼마냐 잔인하냐면, 기적의 날로 불리는 할로윈조차 환영하는 이 거의 없는 악령들만이 살아 돌아왔다. 기적이 있었다면 공룡의 아이도 저도 아무런 희생과 죽음 없이 행복했을 것이다.
어쩌면 각별과 공룡은 제 이름조차 몰랐을 테고, 그냥 제 자리에서, 묵묵하게. 혹은 따듯하게. 기적처럼, 그게 기적인 줄도 모르고 살았을 테다.
그러니 잠뜰은 기적을 믿지 않는다. 마음껏 추억하고, 그럼에도 아프지 않기 위함이었다.
“혹시 만나게 되면요, 그러면 나는 잘 못 지낸다고 전해주세요.”
“.........”
“너무너무 아파서 일어나지도 못한다고. 어쩌면 곧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왜?”
“마음대로 물에 다이빙한 벌이라고 치죠 뭐.”
잠뜰은 잘 지냈고, 건강하고. 각별의 빈자리가 가끔은 휑해도 결코 손이 떨리게 외롭거나 쓰러질 정도로 슬프지 않았다. 그러기에 제 옆에 좋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었고, 그리고 또 바빴다. 하지만 각별만은 조금은 미웠을지도 몰랐다.
“물론 다이빙에는 그쪽 탓도 많지만요.”
“하하........”
“걔가 돌아오거나, 당신처럼 날 보러 얼굴 비출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해요. 너무 착했으니까.”
“그래?”
잠뜰이 고개를 끄덕였다. 공룡은 무언가 생각에 잠긴 듯 미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살아있지도 않은 주제에 몇 번이나 심호흡을 거듭하는 듯싶었다. 그것이 신기하고, 또 약이 올라서. 잠뜰은 괜히 공룡에게 시선을 두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 노력이 무색하게도, 침묵 끝에 들려오는 공룡의 목소리에 되려 생각에 잠기는 쪽은 잠뜰이 되어버린다.
“그럼, 각별이한테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은 없어?”
“전해주시게요?”
“응.”
“좋아요. 그럼.......”
잠뜰이 심호흡했다. 공룡과는 달리 입김이 나왔다. 쌀쌀해진 날씨에 새빨갛게 익은 귀가 따가워서 몇 번 문질러 데웠다.
손도 얼굴도 귀도, 뭐 하나 따듯한 게 없었다. 그럼에도 잠뜰은 느끼지 못했다. 추억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따듯해질 수 있는 뭔가가 그에게 있었다.
“나 단거 많이 줄였어.”
“그래.”
“가끔 네 잔소리가 없어서 심심한데, 그래도 외롭지는 않아. 사실 아픈 곳도 없고 평소처럼 웃으면서 잘 지내고 있어.”
“또?”
“너도 그랬으면 좋겠다.”
너도. 너도 각별아. 너도 그랬으면 좋겠어. 소멸 뒤에 있는 또 그곳에서, 춥지도 덥지도 말고, 병이나 외로움도 없이. 네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따듯하게 모여 살았으면 좋겠어.
불길 속에 함께 죽은 네 형이나, 대신 살아난 나까지 무리 없이 아끼던 너였으니까. 네가 애정 하는 사람들을 다 모으면 백만명쯤 될지도 모르겠다.
그만 착하라고 할 수도 없는 게. 나는 네 선함 덕분에 살아 있으니.
“아무것도 사과하지 말고.”
“.......”
“각별아. 난 괜찮아. 괜찮게 살아.”
“너.......”
잠뜰이 웃었다. 그 얼굴에 슬픔이나 상실, 원망은 없었다. 오히려 놀란 것은 잠뜰의 눈앞에 있던 귀신 하나였다. 짧은 갈색 머리에 제복 차림은 온데간데 없고, 저가 정공룡이라 부르던 사람은 이내 긴 장발 늘어뜨린 각별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노란 가디건이 유독 밝았다. 여전히 참 잘 놀랐다.
“언제, 언제부터.......”
“글쎄. 사실 깜빡 속고 있긴 했어. 너 네 형 흉내 잘 내더라.”
“알아차린 줄 몰랐어.”
“나도 네가 올 수 있을 줄 몰랐어.”
기적이 있는 줄 몰랐어. 각별아. 내내 외치는 그 이름에는 한이 맺혔다. 더 이상 각별이라는 단어로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꽤나 큰 빈자리로 다가왔기에. 잠뜰은 지금이라도 그를 마음껏 부를 예정이었다.
미뤄둔 만큼, 못 부른 만큼. 각별아, 각별아, 각별아. 그러면 그는 놀란 표정 가다듬으며 금세 벅차게 웃었다. 이름 하나 하나 불리는 순간마다, 어느 목소리 하나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끝까지 듣겠다는 듯이, 듣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잠뜰아 난 계속 여기에 있을 수가 없어.”
“알아.”
“그렇지만 살다가 한번쯤은 마주칠 수 있지. 오늘처럼. 아무런 기대도 희망도 없는 날에 갑자기, 불쑥.”
“그것도, 이제 알아.”
“앞으로 마주칠 네가 계속 행복했으면 좋겠다.”
앞으로. 앞으로도 쭈욱. 언젠가 무작위 룰렛처럼 불쑥 마주칠 그날에도 웃고 있었으면 좋겠어. 단 것도 적당히, 몸도 사려가며. 그렇지만 씩씩하게. 사라진 사람에 대한 추억이 아픈 것 아닌 위로가 되면 좋겠다고. 그러면 좋겠다고.
이번에는 잠뜰이 웃었다. 점차 흐려지는 각별의 몸은 이제 붙잡을 수도, 묶어둘 수도 없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웃음은 나왔다. 슬프다거나 아쉽다거나, 그런지 않았다. 잠뜰은 행복했다.
살다보면, 이렇게 살다보면, 제로로 유지된 삶 통째로 바뀔 오늘이라도, 해피하지 못한 날들의 연속이라도, 그럼에도 한 가지 확실하고 확신하는 것은 기적이 존재한다는 것이었다. 상상치도 못한 모습으로 존재했다.
기쁨, 슬픔 그 사이에. 웃음 가득한 인간 하나 귀신 하나 마주보고 서있는 광경 하나가 그랬다. 분명한 기적이었다. 언제일지도 모를 훗날을 기약하며 다음에 보자, 익숙한 인사 나눌 수 있는 까닭은 그랬다. 기적이 있으니까. 각별이 그랬으니까. 네가 내게 줬으니까.
해피 할로윈.
이제는 잠뜰도 이해할 수 있었다.